여전히 홍차의 나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 영국. 영국의 여름 아이스티를 생각하며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루피시아의 여름한정 상품 “브리티시 쿠우라”를 마셔보았다. 여름의 끝자락을 마무리하는 아이스티로는 민트가 들어간 블랜딩도 괜찮겠다 싶어 구매. 루피시아 계절한정은 여름한정이 종류가 꽤 되는 편이라 이번 기회에 되는 데까진 시도해보려고 한다. 8월이 지나기 전에 보부상님께 주문을 부탁드렸다. 50g 봉입에 780엔. 상미기한은 1년이다. 날짜를 보니 6월 제조인 듯.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문자인식으로 글자들을 선택하고 말하기를 누르면 일본어도 읽어줍니다.

이기리스 노 나츠 오 쇼쬬 스루 덴또테키 나 카쿠테루 오 이미이지. 레몬 야 라이므 나도 칸키스 가 사와야카 니 카오루 코차

영국의 여름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칵테일을 이미지. 레몬이나 라임 같은 과이루가 상큼하게 향기 나는 홍차.

시트러스 가향에 민트를 블랜딩 했고 베이스가 다즐링이다. 아이스티로 추천되고 여러 가지 베리에이션 만드는데도 추천하고 있는 나름 본격적으로 밀어주는 차.

하얀 별사탕이요,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사진 찍는다고 흔들다가 어디 묻혀버린 듯.

푸릇한 다즐링에 민트와 레몬머틀, 콘플라워의 파랑색등이 상당히 눈을 즐겁게 하는 와중에 하얀 별사탕이 마치 얼음 알갱이처럼 올라가 있어서 아이스티로서의 기대감을 높인다. 레몬향 보단 라임에 가까운 향이 상큼하고 그 뒤로 민트의 풀향이 풋풋하다. 제법 기대되는 향.

100도의 물로 5g, 300ml, 2.5분 우려 보았다. 민트를 100도로 삶았더니 민트향이 완전 까맣게 타버렸다. 쓴 풀내가 확 끼쳐서 살짝 몸서리를 치며 마셔본다. 레몬머틀의 쌉싸래한 맛과 여리여리한 다즐링이 섞여 레몬다즐링 느낌의 차였다가 레몬라임의 상큼함이 순간 터져 나온 뒤 페퍼민트의 향긋함이 모든 향을 뒤집어버린다. 워터파크처럼 입안에서 찻물이 한번 뒤집히는 느낌이다. 대충 감을 보니 80도 정도가 적당하겠다. 다시 80도, 5g, 300ml, 2.5분으로 마셔본다. 와일드한 페퍼민트향이 먼저 치고 나오는 것은 여전하지만 쓴 내 까진 아니고 은은한 향으로 바뀌었다. 워낙 약했던 다즐링의 풍미가 조금은 살아나고 레몬머틀은 더 상큼하다. 순하게 입에서 넘어간 뒤 새콤하게 입안을 자극하고는 까실까실하게 상쾌한 민트향을 남긴다. 뒤늦게 숨어있던 수렴성에 혀가 살짝 마른다. 별사탕이 들어있는 것 치고는 달달한 향까진 아니다. 혹시나 싶어 재탕을 한 번 더 우려 보면 그냥 호박색의 연한 레몬머틀차가 되어버린다. 이렇게까지 한번 먹고 맹탕이라니. 아이스티에서도 확인해 보았는데 브리티쉬 쿨러는 침출 횟수가 정직하게 1회이다.

얼음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얼음 살짝 모자라서 다 녹아버림. 아이스티는 제빙기가 있는 회사가 짱.

급랭에서는 레몬머틀 > 페퍼민트 > 가향 > 홍차순으로 맛과 향이 뒤집히는데 까실까실한 허브티에 민트의 상쾌함이 시원하고 레몬라임의 상큼함 뒤로 깜빡 할뻔한 홍차향이 마무리된다. 핫티에 비해서는 굉장히 뭉툭한 느낌이다. 이미지적으로 아이스티에 더 잘 어울리긴 하지만 핫티보다 월등히 좋아지거나 하는 건 없었다.

6g, 450ml, 밤새 냉장고에서 냉침을 했을 땐 너무 오래여서 그런지 맑은 수색이 아닌 탁한 차가 되면서 상큼하고 깨끗한 맛이 없었다. 가향이 향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분말로 녹아 들척지근한 맛이 되어있고 레몬머틀과 민트가 흐릿하게 우러난 어중간한 대용차 느낌이 되어버린다. 5시간으로 줄여서 다시 마셔보니 급랭보다 연하고 순한 허브티가 되어있다. 역시 시트러스의 까실함을 살리려면 급랭인가. 시즌1의 레몬셔벗과 비슷한 포지셔닝인데 좀 더 홍차스럽고 민트향이 짙다. 레몬셔벗 쪽은 좀 더 쥬시 하면서 허브꽃 단맛이 났었다.

뒷통수로 봐도 다즐링

신기하게도 엽저에 향이 많이 남아있다. 근데 물에 아무리 담가도 향이 옮겨가질 않았다. 그러하다. 좀처럼 맛과 향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은 차였다. 레몬머틀 의존도가 너무 높다. 다른 친구들, 좀 더 힘을 내라구.

아이스티의 미덕을 몇 번째 이야기하지만 아무튼 뽑아먹기 편해야 한다. 얼음을 만나 차갑게 마시는 차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런저런 분자들의 운동성이 떨어질 테고 맛과 향의 레인지가 아무래도 좁아지기 마련이다. 일렉기타에서 흔히 오버드라이브라고 하는 스피커의 범위를 넘어서게 파형을 키워 의도적으로 일부분을 깎아낸 듯한 소리를 만들 때 얼마나 자연스럽게 스피커의 허용 범위 안에 욱여넣느냐, 혹은 깎아 넣느냐에 따라 좋은 소리인지가 갈리게 된다. 그런데 애초에 범위를 넘어설 수 있게 드라이브가 걸리지 않는다면 오버드라이브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좋은 톤을 가지고 있지만 어쩐지 힘이 딸려서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 버렸던 브리티시 쿨러였다. 하지만 상큼하고 애틋한 구석이 있는 그 톤만큼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