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앵글의 소리를 기억하세요? 은은하지만 또렷한 소리
홍차를 처음 마시기 시작할 무렵부터 쭉 봐왔던 루피시아의 변천사만큼이나 그때부터 지속되는 상품들을 다시 만나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오늘은 루피시아의 오래된 블랜딩 중 하나인 트라이앵글을 마셔본다. 거의 20년 전에 레시피에 시절 848번이라는 상품번호였던 트라이앵글. 이것도 두어 번의 리뉴얼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옛날엔 에프리콧 가향에 망고과육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또 다른 느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금잔화 들어있는 건 여전하고 콘플라워도 비슷해서 외형적으론 크게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오랜만에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리고 여름이 워낙 길어 아이스티용 가향차가 필요해 구입했다. 4~8월 한정의 여름차이고 50g 봉입에 650엔. 제조 후 2년의 상미기한이다.
옛날부터 사진을 좀 아끼지 말고 이것저것 찍어둘걸. 옛날 라벨과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남아있지 않아 아쉽다.
후루츠 노 아마미 토 하나 노 카오리가 싯카리시타 아지와이 노 코우챠 토 요쿠 맛치
과일의 달콤함과 꽃의 향기가 진한 맛의 홍차와 잘 매치
옛날 시음기에도 비슷하게 적어둔 걸 보니 아마도 제품 소개는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친숙한 문장들이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면 아이스티 추천이 붙어있다. 그러고 보면 트라이앵글과 비슷한 계열의 차들은 본능적으로 아이스티를 시도하는 것 같다. 트라이앵글로부터 학습되어 온 아이스티에 적합한 맛이 있다.
봉지를 열면 달큰한 향이 물씬 올라온다. 약간의 휘발향과 함께 풍선껌스러운 향이 끝없이 솟아난다. 건엽을 덜어내면 화려한 색색의 꽃들이 토핑 되어있고 말린 파파야가 함께 들어있다. 예나 지금이나 망고나 파파야, 에프리콧등의 과일과 색색의 꽃들이 토핑으로 들어가는 가향차라는 본질은 그대로다. 로즈힙이라던지 블루메로우가 전에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메리골드와 콘플라워는 여전한 것 같다.
6g의 차를 300ml의 100도씨의 물에서 2.5분 우려낸다. 가볍게 달달한 향이 나면서 우러나는 홍차. 잔에 따라내고 보니 밖으로 퍼져나가는 향은 아니고 잔 안에 얌전히 모여있는 향이다. 덩달아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셔보면 달큰했던 찻잎향과는 달리 고요하게 달달한 맛이다. 어찌 보면 향보다 맛이 더 단 느낌인데 입안에서 비강으로 올라가는 향은 별로 없고 코로 직접 들어오는 은은한 가향에 맛에서 단 게 더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역으로 밍밍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 생각해 보면 굉장히 옛날 가향차의 느낌이다. 파파야 토핑이 그렇지만 인상이 강하지 않고 가향과 함께 열대과일스러우면서 에프리콧도 비슷한 느낌으로 연하게 과즙미를 풍겨낸다. 이것도 클래식한 인상. 극단적으로 순한 차 맛인데 실론이 주를 이루는 느낌에 약간의 구수함은 닐기리에 가까운 것 같다.
아이스티를 빼놓을 수 없는 트라이앵글이다. 물을 절반으로 줄여 급랭으로 만들어보았다. 달달찐득한 향이 폴라포 같은데 이거 어딘가 익숙해서 보니 캬슈캬슈와 비슷하다. 징글벨도 비슷하긴 한데 그렇게까지 대놓고 청포도스러워지는 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캬슈캬슈가 트라이앵글에 핑크페퍼가 들어간 약간의 계절성을 반영한 차의 느낌이고 트라이앵글은 파파야 쪽 무게가 조금 더 들어간 느낌의 차란 생각이 든다. 워낙 부드러운 차라서 급랭을 먼저 택하였으나 전혀 튀는 맛없이 여전히 곱고 부드러운 맛을 유지한다. 이미 순한 차라 냉침을 해도 부드러운 맛이 부각되거나 그러진 않는데 오히려 이쪽이 핫티에 더 가까운 향을 내는 기분이 든다. 옅은 열대과일의 느낌으로 고요하다는 인상을 준다. 뭐 하나 악센트가 없다 보니 그런 인상을 받는 것 같은데 편하다는 느낌과 재미없다는 느낌이 공존할 수 있는 그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평이 달라질 수 있겠다.
눈에 띄진 않지만 꾸준히 제 역할을 잘해주면서 오래가는 친구들이 있다. 트라이앵글이 딱 그런 느낌이다. 그래도 가향차라 어느 정도 화사하긴 하지만 좀 더 데일리의 느낌. 게다가 옛날엔 이런 게 고급스러운 맛이었어 싶은 마치 경양식 같은 매력. 트라이앵글이 조용하지만 확실하고 힘 있게, 그러면서도 은은하게 울려 퍼지듯 이 차도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트라이앵글,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