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아센 차이코프스키 박수예, 이혁
엘지아트센터에서 박수예, 이혁 협연이 있다고 해서 일찌감찌 예매해두었던 공연. K-Classic 스포트라이트 시리즈 1- Passionate K-클래식의 열정이라는 제목으로 2층 앞자리 B석이 무려 2만원, 회원할인해서 만팔천원이었던 혜자공연이라 놓칠 수 없다 얼른얼른 예매했었다.
요엘 레비는 지금 상임으로 있는 잉키넨의 전임 지휘자로 6년인가 KBS에 있었는데 워낙 공사가 다망하신 잉키넨인지라 최근에도 종종 공연이 커버가 안될땐 불려오시는것 같다. 어쨌든 포스터에서부터 특별공연 느낌이 물씬 나는 공연이고 금요일 공연인데 수목 장마비에 습기가 가득한 금요일이라 걱정을 많이 했었다.
엘아센 2층에서 무대가 상당히 가깝게 느껴졌는데 롯데나 예당이 워낙 2층이 멀리서 시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그런것 같다. 주관적인 느낌입니다.
이수연의 점과 선으로부터 초연. 혀어언대 음악은 언제나 어렵지만 점과 선이라는 해석의 도구가 주어지니까 그래도 좀 어디가 점이고 어디가 선인지는 알겠는 곡이었다. 무대 올라와서 인사도 하셨다.
팀파니에 이원석 팀파니스트가 계시길래 너무 반가웠는데 협연때는 나오지 않으셨다. 전철에서 가끔 뵙기도 하고 옆자리에 앉은적도 있는데 (심지어 KBS교향악단 커버씌워진 악보를 꺼내서 보고 계셨다) 소니 해드폰 노캔을 끼고 악보를 보고 계셔서 차마 가드를 뚫고 인사드릴 용기가 나질 않아 팬이라고 인사를 드리진 못했다. 다음에 또 뵙게되면 꼭 인사하리라. 근데 전철에서 수석 연주자 만나고 하는게 흔한일이 아니지 않나? 이미 모든 운을 소진한것일수도…..
박수예의 차바협은 첫 네마디가 가장 좋았다. 현으로 시작하는 도입부에서 와아 소리 너무 좋아! 했는데 그 뒤로 협주곡 끝날때까지 마실것도 없이 삶은계란 계속 먹는 기분으로 들었다. 사실 연주의 문제라기보단 이 날의 곡 해석이 내 취향이 아니었던 탓인데, 뭔가 아티큘레이션을 강조하는건지 뭔지 모르겠으나 모든 부분에서 주춤주춤 조심조심 세세한걸 억지로 다 집고 넘어가려고 브레이크가 딱딱 걸리는 느낌이었다. 차바협은 카리스마가 생명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조곤조곤 차분한 톤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오케스트라가 그런 경향이 너무 강했으며 협연자는 그런 오케스트라를 믿지 못해 과감하게 치고나가야할 부분에서 좀 더 내면적인 연주를 하지 않았나 싶다. 오이스트라흐, 이작 펄만등의 강풍기 찢고 나아가는 상남자 스타일에 너무 귀가 젖어있어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당연하지만 소리 자체가 별로이진 않았고 탄탄하고 안정적인 연주이긴 했다. 차이코프스키의 모짜르트화. 오히려 엥콜로 연주한 바이올린 소나타가 훨씬 더 좋게 들렸다. 나중에 알게되었는데 컨디션이 정말 별로였다고. 여러모로 다음 기회에 다시 들어보고 싶은 연주였다.
이혁의 차피협 1번. 말도안되는 큰 보폭으로 뚜벅뚜벅 무대로 나오는 장면에서부터 기대감이 엄청났다. 차피협 1번이 어떤곡이냐. 어느 잔치에서도 빠지지 않는 잔치국수 같은 메뉴인데 오히려 이런게 잘하기는 더 어렵고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곡이지 않겠는가. 그런의미에서 한참 기대를 하고 곡이 시작되어 “뽬뽬뽬뽬 빵~~~“ 뚱뚱뙁!! 뚱뚱뙁!! 하는 순간 엇. 뭔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빠지면서 피치카토와 함께 피아노가 나서는 순간 정말 큰일이 났다 싶었다. 오늘의 조명, 온도, 습도… 피아노가 물에 빠져서 익사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피아노 소리가 정말 딱 피아노 사운드보드에서만 나고 악기도 홀도 울림이 거의 없는 상황. 하지만 침착하게 연주를 이어나가더니 1악장의 초반이 끝나갈 무렵이 되었을때 어? 갑자기 피아노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완벽하게 피아노를 장악하고 컨트롤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공연장 특성인것 같은데 오케스트라가 치고 나올때마다 정말 파도에 모래성 지워지듯 지워지는 피아노소리는 어쩔수가 없었는데 그야말로 듣는 내가 다 고군분투했고 3악장 끝날때까지 긴장을 놓칠수가 없었다. 이미 오늘의 환경이 너무 어렵다는걸 알아버리고 들었더니 끝까지 너무너무 응원하는 마음으로 들었고 3악장 끝나는 순간 부라보와 함께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앞에 관객분 기립박수 끝나면 사진을 다시 찍고싶었는데 앉지를 못하심. 그리고 6월의 마지막 날 듣는 사계 6월 뱃노래 앵콜.
오늘의 공연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말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좋은 음악을 연주해주신 연주자들의 승리. 뭐 이정도 될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엘아센에서 협연을 들을 일이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