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이즈 더 뉴 블루. 니가 왜 여기서 나와. – 라무네
루피시아의 여름한정 시리즈에서 이건 정말 일본만의 갬성이다 싶은 차가 있는데 바로 오늘 마셔볼 라무네이다. 일본 애니, 드라마, 영화 등을 자주 본다면 한 여름 해가 쨍쨍한 어딘가에서 투명하고 작은 병에 파란 라벨 붙어있는 뭔가 약병 같아 보이는 음료수를 키햐아아아 하면서 마시는 장면을 한번쯤 본 적이 있을 텐데 바로 그 음료수가 ‘라무네’이다. 일본 여행 가면 한 번씩 먹어본다는 구슬 사이다가 바로 그것. 사이다, 밀키스, 캔디바 파랑 부분 맛이라고 들어보지만 막상 먹어보면 또 그런 맛도 아닌 바로 그 음료수가 일본의 국민 여름음료 라무네인 것이다. 아니 근데 그걸 왜 녹차에 블랜딩을 한다는 건지.. 한국에서 비슷한 느낌을 굳이 굳이 찾자면 쿨피스 얼린 것 정도 되겠는데 그걸 녹차에 블랜딩 할 생각을 누가 하냐고요. 구매 우선순위가 상당히 낮은 차인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영 맛볼 기회가 (나눔 받을 기회도 아주아주 희박하다) 없을 것 같아서 보부상님께 주문을 부탁드렸다. 50g 봉입에 700엔. 여름한정이지만 상미기한이 1년.
라. 무. 네. 해놓고 밑에는 레몬 소다라고 당당하게 적어두었다. 저기요, 레몬맛 안나잖아요. 처음엔 레모네이드를 만들려고 했던 (그래서 레모네이드와 이름이 비슷함) 라무네의 기원을 살려서 레몬 소다라고 해놨는데 그냥 소다라고 해놓는 게 나을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레모네이드라고 해두던지.
나츠노 푸부츠시 라무네 노 카오리 가 스루 료쿠차 데쓰. 사야카 나 후우미 와 아이수티 니 피따리.
여름의 풍물시 라무네의 향이 나는 녹차데쓰. 상큼한 풍미는 아이쑤티에 딱임.
여름의 상징 같은 라무네 가향 녹차, 뜯어본다.
일본 녹차에 하얀 별사탕이 들어있는 심플한 구성이다. 진짜로 밀키스향이 확 난다. 실화냐고.. 말차도 아니고 녹차맛 캔디바를 상상해 보자니 뭔가 우주 저편의 맛이 연상된다. 이젠 나도 진짜 모르겠어…
일단 녹차의 풀내와 바닐라도 아니고 우유향도 아닌 그 중간의 묘한 소다향을 느끼고 있으니 신비로운 기분이 든다. 인지부조화의 대 축제. 그만하고 이제 우려 본다.
우선 따뜻하게 마셔보았다. 3g, 160ml, 1.5분, 70도로 우려 본다. 오랜만에 녹차 셋팅. 여러분 이 차는 절대로 아이스티입니다. 혹시 따뜻한 콜라 드셔보실? 달큰한 소다향에 녹차맛이 살아있는데 심지어 따뜻하니 몸이 훈훈해지는 이 상황이 인지부조화에 부조화를 더해 정말 혼란스럽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에요. 진짜… 진짜 혼란스럽다고. 재탕에서는 2분으로 늘려서 한 번 더 마셔본다. 가냘프기 짝이 없는 소다향이다. 두 번을 못 간다니… 한김 식히니 다시 소다향이 살아나긴 하지만 애초에 핫티에 어울리는 가향이 아니다. 얼른 아이스티로 넘어가 본다.
5g, 150ml, 1.5분, 70도로 급랭을 먼저 해보았다. 맑고 밝은 녹색의 수색이 영롱하다. 라무네의 맛까지 어느 정도 따라가고 싶었는지 아마도 금평당의 영향이겠지만 달달한 맛과 함께 아주 부드러운 녹차의 맛이 은은한 소다향을 들춰 올리며 “라무네에에” 하고 웃는다. 수렴성이 거의 없는데 차의 맛도 완전히 김 빠진 라무네에 녹차를 냉침한듯한 맛이 난다. 나쁘지 않은데 제가 뭘 마시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핫티와 마찬가지로 잠시 뜸을 들이면 숨어있던 라무네향이 진하게 살아난다. 급랭은 재탕까진 간신히 버티는 듯. 시원해서 빨리빨리 마시고 다음 탕 뽑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냉침을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간간히 탄산냉침이 괜찮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아, 탄산냉침을 하면 김 빠진 라무네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인가, 하며 빅토리아 플레인 탄산수로 냉침을 해보았다. 450ml 탄산수에 6g 넣어주고 하룻밤 냉침. 결과는 진한 향이 훅~ 하고 초반에 날아가버리고 그다음엔 맛도 향도 밍숭맹숭하게 지나가버린다. 정확히는 빅토리아 탄산수의 거대한 탄산에 훅 쓸려나간 느낌. 탄산냉침을 하려거든 좀 약한 탄산수를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가향이 좀 나약한 편.
생수냉침에서는 향이 정말 진하게 고여서 뚜껑을 열자마자 쪼끔 과장 보태서 진한 바닐라 향에 가까운 느낌이 있었다. 개인적으론 탄산 냉침보다 나은 듯. 하지만 녹차맛이 가향과 달달함에 깔려버린다. 차 향은 하나도 없고 레무네향 초록물 그 잡채. 결국엔 절반정도 급랭, 나머지는 냉침으로 번갈아가며 마셨다. 늘 이야기하지만 아이스티에 잘 어울리는 차는 범용성이 좋아야 한다. 이렇게 나약한 가향, 혹은 이렇게 어중간한 내포성으론 우리 아.아.의 민족을 절대 만족시킬 수 없다.
가향을 제껴놓고 생각해 보면 녹차가 제법 괜찮다. 반대로 가향만 생각해 본다면 향 자체는 정말 라무네향으로 완벽한 향을 보여준다. 이걸 동시에 맛을 보려니 그저 혼란스러웠을 뿐이다. 그리고 둘을 동시에 잘 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마시면 또 맛있게 마실 수 있는데 그냥 물 마시는 게 아니다 보니 자꾸 음미하게 되고 음미하면 헷갈리고. 이게 맞나 싶다.
투명한 음료인 라무네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파란색이다. 혹은 흰색이거나. 그런데 저 밝은 녹색의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수색이 안녕, 나 라무네야, 했을 때 내가 알던 라무네는 완전히 붕괴해 버렸다. 뭐라 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라무네 생각보다 그냥 그렇네요.” 이 한마디를 이렇게 길게 적다니.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