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8255. 아마나츠 우롱

여름아 물렀거라 하면서 계속 마셔보는 루피시아의 가향우롱 시리즈. 아마나츠 우롱은 호불호가 좀 있는 편으로 기억하는데 기회가 있을 때 마셔봐야지 않겠냐며 장바구니에 넣어놨다. 결과적으론 정말 잘한 것 같다. 아마나츠는 일본의 귤 품종 이름으로 甘夏, 그러니까 달콤한 여름 정도 되시겠다. 로맨틱한 이름인데 사정을 알아보면 청귤류를 비롯한 여름귤이 아무래도 신맛이 강하고 과일 자체로는 소비가 잘 안 되니 감귤처럼 좀 달달하게 개량한 여름품종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꽤 직관적인 이름. 아무튼 그런 아마나츠 귤로 가향을 한 우롱차로 시트러스 우롱이 흔했던가 생각해 보면 꽤 특이하다고 할 만한 차인 것 같다. 계절한정으로 4~8월에만 나오지만 어쩐지 9월 중순인 지금도 주문이 가능. 재고 물량으로 봐도 호불호가 확실히 있다니까. 50g 봉입으로 930엔이고 상미기한은 제조로부터 1년. 강한 시트러스의 짧은 수명이랄까.

아마나츠 우롱

봉투가 꽤 얇아서 놀랐는데 50g 맞나 확인해 보니 또 무게는 맞다. 우롱차 엄청 꽉꽉 눌러서 뭉쳐놨나 보다. 평범한 우롱차 라벨과 레시피.

스키리싯타 타이완 우롱차 오 텐넨 유라이 노 아마나츠 미캉 데 아마즈빠쿠 카오리즈케
깔끔한 대만 우롱차를 천연 유래의 아마나츠 귤로 상큼하게 향을 더했습니다

깔끔한 대만 우롱차라니. 벌써부터 느껴지는 맛있는 청차의 기운. 이것은 반드시 청향우롱이에요. 하지만 청향우롱에 시트러스라니 아직도 잘 상상이 안된다. 올여름은 그러고 보니 철관음 아이스로 초반을 버텨내더니 후반엔 루피시아 아이스 우롱으로 지나가고 있다. 긴 여름이네. 이야기를 안 한 것 같은데 아마나츠 우롱도 공홈에서 확인해 보면 아이스티 라벨이 붙어있다. 아이스 보증 꽝.

차즙을 잔뜩 냈을것 같은 우롱차

봉투를 열자 찐한 유자향과도 비슷한 시트러스의 향이 난다. 휘발성의 풍선껌향이 확 나는 건 아닌데 꽤나 자연스러우면서도 찐득하다. 이것이 천연유래의 향인가. 찻잎을 덜어내자 꽤 무게감 있게 찻잎이 떨어진다. 부피로는 얼마 넣지 않았는데 무게가 쭉쭉 올라간다. 정말 작고 단단하게 뭉쳐놓은 찻잎이다. 이렇게 뭉쳐놓는 것을 포유라고 하는데 포유가 강하게 되어있는 차들을 별생각 없이 넣다 보면 찻잎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나중에 잎이 풀리면 밖으로 터져 나오려고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이런 차들은 세차를 하면서 약간 잎을 풀어주고 본격적으로 마시기 마련인데 으잉, 별사탕이 같이 들어있다. 골라낸 뒤에 세차한 뒤에 따로 넣어주던지 아니면 세차 없이 바로 마셔야겠다. 노란 금평당이 아마나츠 귤을 나타내는 건가. 뭐 감상은 이 정도로.

60ml 개완에 4g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쌔한 향이 어딘가 불안해서 30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따라냈다. 아닌 게 아니라 가향이 살짝 화가 나있는 느낌이다. 조심히 한 모금 마셔보니 이거 재밌는 차네. 우롱차의 청향이 꽤 묵직한데 청귤가향이 뜨겁게 느껴지면서 살짝 구운 귤의 느낌이 난다. 겨울 바베큐할때 종종 남은 불에 귤을 굽곤 하는데 딱 그 구운 단맛의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감귤은 아니고 청귤에 비슷하지만 좀 더 자몽스러운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약간은 탄듯한 맛에서 고무줄 같은 느낌도 든다. 자몽가향은 너무 뜨거운 물에 삶으면 이렇게 고무줄 같은 냄새가 나더라. 알수록 재미있는 게 한 김 식혀서 우리면 미끌미끌한 청귤청 느낌이 난다. 청귤류 특유의 비릿한 뉘앙스에 단맛이 더해져서 더 그런 것 같다. 세헤라자드에 비하면 한결 조화로운 자몽 뉘앙스이다. 내가 민트 쪽을 잘 못 다뤄서 그런 건지. 은은하면서도 분명한 악센트가 있는 시트러스에 우롱차의 맛이 조화를 이루는 게 일품이다.

아이스티의 사진이 어딘가 있을 텐데.. 찍은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어쩔 수 없지. 사진 없이 이어가 본다. 급랭 시 한결 부드러운 청귤향이 느껴지는데 우롱차의 달달 고소한 맛과 함께 그야말로 김을 한 장 먹고 나서 나는 향과 같은 기분이 든다. 나 이 김 어디서 먹어봤는데. 도대체 뭐였을까. 급랭의 경우에도 잠시 뒀다 마시면 청향이 올라오는데 시트러스와의 조합이 훌륭한 편이라서 색다르게 즐거운 느낌이다. 약간의 해조류 뉘앙스, 미역 다시마가 아닌 구운 김의 뉘앙스가 아이스티에서 살아난다는 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루피시아의 차들뿐만 아니라 요즘은 아이스티는 무조건 냉침으로 기준이 잡혀가는 느낌인데 이런 부분 때문에 급랭과 냉침은 구분해서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냉침을 하면 그야말로 매끈한 청귤의 느낌이 확 살아난다. 차가울수록 시트러스가 살아나는 느낌인데 아무래도 청차가 제대로 청향을 뿜어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다들 아마나츠는 냉침이라고 하던데 내 경우엔 압도적으로 급랭.

의외로 만족스러웠던 차품

꽉꽉 눌러 말려있던 차들은 어느새 넓적하게 몸을 풀어냈다. 꽤 긴 가지들도 섞여있어서 놀램. 유념할 때 이미 많이 말랑한 가지가 되었다는 건가. 다른 우롱차들에 비해서 200엔이나 싼데 꽤나 만족스러웠던 차품이었다. 가성비 너무 좋잖아. 가성비 좋은 청향우롱에 내 기억엔 거의 없는 시트러스 우롱의 맛이 제법 괜찮아 기억해 두고 또 구입할 것 같은 맛이었다. 경험으로 치자면야 세콰사우롱이 있긴 했는데 그야말로 20년 전이라 기억이 안 난다, 말 나온 김에 내년엔 나란히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겠네. 자몽도 아닌 것이 청귤도 아닌 것이 달달한 여름의 맛이라고 불리는 아마나츠의 맛이 감도는 청향우롱, 아마나츠 우롱도 끗.


차 마시는 영상 : https://youtu.be/7nxhcsTr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