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들기름 막국수
유학시절에 힘들때 종종 듣곤했던 모차르트가 있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인데 연주자는 마리아 조앙 피레스였다. 그 앨범을 들으면서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고 너무 딥하게 빠지지 않으면서 정신집중이 필요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흔히 마리아 여사님이라고도 부르는 피레스의 한국 리사이틀은 이번이 두 번째로 22년 공연을 못간것은 너무 아쉬웠다. 특히나 건강이 많이 안 좋아보이시고 컨디션이 앞으로 공연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소문이 돌아서 더더욱 안타깝고 아쉬웠는데 올해 ‘마지막’이라는 단서를 달고 내한을 또 하셨다. 폴리니 할아버지도 그렇고 기회 될때 어떻게든 한번 만나봐야 맞겠다 싶어서 냉큼 취소표를 줍줍한 리사이틀.
피레스=모차르트 라는 어떤 편견이 있었기에 프로그램이 드뷔시와 슈베르트에서 쇼팽과 모차르트로 바뀌었을 땐 좀 짜릿했다. 근데 쇼팽 녹턴이라니? 싶어서 찾아보니 쇼팽 녹음도 많이 하셨었구나. 앨범 찾아듣고 놀랐던게 기존의 다른 연주들과 너무 달랐다. 무광인데 빛나는 느낌. 그 날 이후로 진짜 기다리던 공연이다.
- 변경 전
- 드뷔시: 피아노를 위하여, L.95
- C. Debussy: Pour le Piano, L.95
-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Op.90 D899
- F. Schubert: 4 Impromptus, Op.90 D899
-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a단조, D845
- F. Schubert: Piano Sonata No.16 in a minor, D845
- 변경 후
- 쇼팽: 녹턴 Op. 9, No. 1, 2, & 3
- Chopin: Nocturnes Op. 9, No. 1, 2, & 3
- 쇼팽: 녹턴 Op. 27, No.1 & 2
- Chopin: Nocturnes Op. 27, No.1 & 2
- 쇼팽: 녹턴 Op. Posthumous
- Chopin: Nocturnes Op. Posthumous
- 모차르트: 소나타 No.10 in C 장조, K.330
- Mozart: Sonata No.10 in C Major, K.330
- 모차르트: 소나타 No.13 in Bb 장조, K.333
- Mozart: Sonata No.13 in B-Flat Major, K.333
암전이 되고 마리아 여사님께서 종종걸음으로 나오시더니 박수를 받으며 인사 한번 하시고는 자리에 앉으 시..자마자 첫음. 대가들은 다들 왜 이렇게 엉덩이 붙이는 순간 첫음인걸까. 정말 의아했던게 마리아 여사님은 항상 엄청난 속주에 터치도 뚱땅뚱땅 이제 막 피아노 학원 다니는 초등학생 같은 연주라는 인상과 동시에 정말 섬세하고 정확한 컨트롤을 보여주신다. 과감하고 무심한 연주의 끝판이라고 생각되는데 파지올리 피아노의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도 너무 인위적이지 않도록 소리의 그 영롱함을 살짝 지워내는 컨트롤을 보여주시는 것 같았다. 특히나 녹2에선 가볍게 가볍게 어찌보면 대에에에에충 치시는데 프레이즈 사이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내면서 어떤 에너지의 구체를 띄워올리시는 느낌이었다. 다음 곡으로 갈수록 그 작은 체구가 엄청 거인처럼 느껴지고 뚱땅거리는듯한 소리 가운데 거대한 파도가 철썩이는 명상적인 연주. 인터미션도 없이 이어진 모차르트는 생전에 모차르트 뵙고 인터뷰도 몇번 하고 오신 분 같이 아마데우스는 이런 느낌을 생각하고 이거 썼을텐데를 정답처럼 보여주었다. 천재는 고민같은거 없이 나오는대로 그냥 연주하고 작곡했다구, 이렇게. 뭘 자꾸 씹고있어 여기서는 이게 들리고 여기선 이게 들리면 되는거야. 네, 맞습니다 선생님.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들기름 막국수 같은 쇼팽
한마디로 비유하자면 딱 저런 느낌인데 감정 실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연주할 것 같은 부분에서는 시래기 짜내듯 쫙쫙 거침없이 짜내시는데 그 시래기가 너무 부드럽고 질기거나 거친것 하나 없는 느낌이고 갑자기 면발을 찬물에 휘휘 행구시는듯 후루룩 연주하시더니 들기름으로 사악 비벼주다가 후루루찹찹 마무리하고 끝이 난다. 이런 들기름 막국수 말아주시는듯한 연주가 그 과정과 사이사이 공간들에서 깊은 명상적 순간들을 주시니까 진짜 대가란게 뭔지 알 수 있는 연주였다.
이틀 뒤 압구정에서 한강쪽으로 산책가시는 마여사님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작은 크로스백 하나 매고 혼자서 천천히 묵묵히 걸어가시는 피레스 선생님. 비가 심하게 내렸던 공연날과 마여사님이 산책하시던 날의 유난히 좋았던 햇살을 생각하며 마여사님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연주 계속해서 들려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햇살이 아름다웠던 한강을 생각하시면서 한국 한번 더 가볼까 생각도 해주시면 더 좋고. 연주회는 길지 않게, 매일 산책으로 건강관리. 그렇게 오래오래 봐요 할머니.
Chopin – 3개의 왈츠 2번 C# 단조 Op.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