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8267. 완숙망고우롱

루피시아의 가향우롱은 탄탄한 베이스로 유명하고 특히 아이스티로 깔끔한 게 또 유명하다. 여름이면 가향우롱이 잘 팔리는 이유이다. 완숙망고우롱은 의외로 옛날부터 있었던 차로 8235 시절 마셔보고 다시 마셔보는 건 거의 20년 만이다. 아마도 06년에 히로미라는 친구가 사다 줘서 마셔본 것 같다. 여름방학이라 집에 다녀오면서 심부름을 해주었는데 직원이 추천해 줘서 사 왔다고 했던 것 같다. 당시엔 추천도 자주 받던 차였을 텐데 최근의 인기는 글쎄. 일단 주변에서 많이 마시는 걸 보진 못했다. 잘 지내는지 궁금하고 이상기후로 여름이 한참 남아 보여서 하나 구매. 50g 봉입으로 1150엔. 상미기한은 1년이다.

칸쥬쿠망고우롱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망고를 우롱차와 쉐킷쉐킷했다니 벌써부터 맛있겠다.

칸쥬쿠 망고 오 이미지시타 노우코우나 아마이 카오리가 타노시메루 사와야카나 아지와이 노 죠우싯츠나 타이완 우롱차
완숙 망고를 연상시키는 진하고 달콤한 향을 즐길 수 있는, 상쾌한 맛의 고급 대만 우롱차.

진하고 달콤한 향을 즐길 수 있다니 견딜 수 없다 빨리빨리.

망고조각이 뿅

봉투를 열자마자 뽀얀 우유향처럼 망고향이 폭발한다. 바나나우유향 진하면 펑 터지는 그런 느낌. 가향을 얼마나 때려 넣은 거야… 근데 또 휘발성 향이 찌릿하진 않은 걸로 봐서 가향이 진짜 잘됐다고 봐야 할지. 건엽을 덜어내자 오렌지 플라워가 눈에 띈다. 옛날엔 메리골드가 많이 들어있었던 거 같은데 오렌지 플라워가 좀 더 망고껍질 같고 그럴싸하다. 역시나 질 좋아 보이는 우롱차. 그리고 많지 않은 망고조각. 봉지에 열 조각 넘게는 들었을지 의문이다. 어지간히 들어있지 않고는 언제나 아쉬운 게 과육이다. 사람 맘이란 게..

60ml 개완에 3g 넘는 차를 넣어주고 95도의 물을 부어주었다. 30초 정도 우렸을까. 연녹색의 뽀얀 색으로 차가 우러난다. 어딘가 이상한 느낌. 가향이 많이 됐다 싶긴 했지만 뜨거운 물로 삶았다고 이렇게 가향 탄내가 날줄은 몰랐다. 망고가향이 너무 뜨거운 물과 만나면 종종 칼칼한 향으로 변하고 마는데 나는 그게 어쩐지 가향 탄 냄새 같다. 생각보다 많이 잘 타버리니 녹차보다 조금 더 따뜻한 정도로 우리면 될 것 같다. 80도 이하면 충분. 충분히 식힌 물로 우려낸 완숙망고우롱은 역시나 밀키한 망고향이 진하게 퍼져 나온다. 망고 아이스크림처럼 진한 인공 망고향이 거슬리는 느낌 없이 살짝 식은 물로 우려낸 우롱차에 잘 어울린다. 워낙 우유처럼 뽀얀 탈지분유 같은 향이어서 따뜻하게 마시기엔 살짝 인지부조화가 올 수 있는 느낌이다. 딸기우유 바나나우유를 데워서 먹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밀키우롱의 느낌과는 다른 망고주스의 뉘앙스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따뜻하게 마신 것도 꽤 여러 번이니 안 어울린다고도 할 수는 없겠고.

급랭 완숙망고우롱 아이스티

이러니 저러니 했어도 역시 이것은 아이스티에 어울린다. 아이스티 마크가 괜히 붙은 게 아니지. 개완에 넉넉히 5g 같은 4g을 넣어준다. 이러면 차가 풀리면서 개완 뚜껑을 열고 올라오겠지만 급랭을 위해 우리는 차는 눈 딱 감고 차를 팍팍 넣어줘야 제맛이다. 가향이 타지 않도록, 하지만 충분히 뜨거운 물로 우려 줘야 한다. 우롱차가 잘 우러나지 않으면 워낙 센 가향에 밀려서 급랭시 화장품맛이 될 수 있다. 진하게 두포 우려내어 얼음컵에 담아준다. 아이스티의 영롱한 색. 역시나 아이스티가 제맛이긴 하다. 깔끔한 망고향의 풍선껌 같은 물. 이걸론 만족이 안되니 냉침을 해본다. 10g을 과감히 400ml 좀 안 되는 물에서 4시간 이상 냉장고에 넣어 우렸다. 비로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진다. 냉침 특유의 매끈한 맛과 진한 망고향이 어우러진다. 이쯤 되니 우롱차의 차품조차 냉침에 맞춘 게 아닐까 싶어지는 맛이다.

망고조각의 분열과 여전히 좋아보이는 차품

나이를 먹어가면서 입맛이 무뎌져 차를 좀 많이 넣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번에 만난 망고우롱은 시종일관 망고가향의 거센 피치가 비강을 사정없이 후드려 패서 흠칫흠칫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냉침으로 다스려서 겨우 알맞게 되었지만 인기순위가 점점 밀려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루피시아의 대부분의 차들이 무엇 하나 거슬리는 것 없도록 만드는 게 큰 흐름인데 완숙망고우롱은 어쩌다 이렇게 튀어 오르는 차가 된 걸까. 모르겠지만 일단 냉침으로 팍팍 소비가 가능한 1150엔의 차라니 회사 입장에선 좋으려나. 언젠가 리뉴얼되면 다시 만나보자 싶은 완숙망고우롱이었다. 망고우롱을 마시면서 올여름에 놓쳐버린 성심당 망고시루 생각밖에 안나는 것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모르겠는 완숙망고우롱, 끗.

차 마시는 영상 : https://youtu.be/7nxhcsTr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