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 2회


이틀 동안 나는 바깥 빛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백수라도 먹고살 용돈은 벌어야 하는 거니까.

마감날짜를 또 넘겨버려 어제는 편집부에서 호출이 왔다.

“거 어젯밤이 마감이었는데 왜 아직 소식이 없나? 내일은 원고가지고 직접 와.”

전화가 끊기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 떨어졌다.

허긴 나 같은 사람 아니어도 잘 쓰는 사람 많을 텐데.. 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새벽녘에야 부랴부랴 원고를 마감하고 잠깐 눈을 붙인 뒤 밖으로 나섰다.

밥도 굶었는데 이상하게 속이 든든하다. 잠결에 뭘 집어먹기라도 한 걸까. 배가 부르니까 짤리면 어떠냐는 생각까지 든다.

“아 도연씨. 편집장님 오늘은 아직 안 나오셨고요, 오시면 다음 연재 어떻게 하실 건지 좀 알아놓으라고..”

바짝 쫄아서 갔더니 왠 여직원이 편집장 대신 나를 맞는다. 나쁘지 않네..

“다음꺼 주제가 뭐죠?”

뭐긴, 그런거 생각해놨을 리가 없지. 작가기질이란 이런 때 나오는 법이다. 생각한 적이 없어도 잘도 둘러댄다. 그나저나, 언제나 지저분하다 이 사무실.

“아.. 그렇군요.”

수긍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한방에 오케이될 아이템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머린데 왜 아직 유명작가가 되지 못한 거지?

주변이 아까부터 시끄럽다. 이 사람들은 왜 일은 안하고 자꾸 떠들고만 있는 거야.

“네?”

“에?”

“제 전화번호 아시냐구요.”

딴생각 하느라 못 들었는데.

그나저나, 당연히 알고 있을 꺼란 기대의 표정을 나에게 보이는 건 왜지? 사람 더 무안하게..

“아. 명함.. 제가 받았던가요?”

표정에 들어갔던 힘이 풀린다. 명함 받았던가?

“제가 전에 만났을 때 적어드렸는데.. 그때 좀 많이 드셨나봐요, 술.”

아. 혜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직 있다. 그 하얀 종이.

“아~ 혜선씨~ 아 맞다. 받았다 그때.. 아 있어요. 여기 있네.”

주머니의 종이를 꺼내 보이며 얘기하는데 종이가 꼬깃꼬깃 구겨져있다. 종이를 대충 펴보다 잘 안 돼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아.. 낮에 보니까 못 알아보겠네. 이뻐서.”

“뭐, 아직 가지고 계시면 됐어요.”

화난건가. 쪽팔린다는 생각때문에 아무것도 분간이 안간다.

“저녁 드실래요?”

아차. 생뚱맞다. 아직 세시반이다. 일 얘기도 아직 다 안끝났고..

“네?”

“아니, 제가 약속이 있어서 내일 저녁에 다시 왔으면 하는데.. 뭐, 아직 아이디어도 제대로 나온 것

도 아니고.. 또 편집장님도 어차피 한번 만나서 설명을 해야 하는 거니까.”

한번 뱉은 말은 다시 담을 수 없다더니 딱 그 꼴이다. 또 뭐라고 횡설수설했는지는 몰라도 건물 밖 공기를 마시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내일 뵐게요, 하면서 어색하게 웃어주던건 기억나는데.

결국 저녁은 편집장과 혜선씨 그리고 나 세 사람이 함께했다. 편집장 말이 좋은것 같기도 한데 한번 들어봐야 겠다는 것이다. 내 뜻이 아닌 편집장의 의지에 따라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러니까, 어느 가게에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생기는 이야긴데요.”

상습적으로 마감을 어기는 사람이라 관리할 사람을 하나 붙여줬다는둥, 앞으로 혜선씨말 잘들으라

는둥 하는 얘기들 때문에 식사 전엔 다음 작품 이야기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가게 이름은 뭐에요?”

“음.. 레몬가게.”

“이쁘네.. 무슨 뜻있어요?”

갑자기 들어온 혜선씨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답했는데 의외로 좋은 반응을 보인다.

“그냥 생각이 났어요.”

바텐더가 주문을 받으러 편집장에게 말을 걸었다. 꽤나 잘 어울리는 복장이다.

“삿뽀로 있나? 어. 그걸로. 그래, 좀 에로물 쪽으로 나가는 건가? 아님 멜로물 쪽인가?”

에로라니.. 자기가 무슨 스포츠신문 쓰는 줄 아나.

“글쎄요. 에로는 아직 안써봐서. 아. 전 블랙러시안이요.”

“뭐 잘해봐. 이번꺼 생각보다 반응 좋았어. 그래서 안짜르고 계속 쓰는 줄 알어.”

생색 대마왕.

“우리 혜선씨가 들어온 지는 얼마 안됐지만 실력은 좋아. 그 속 썩이지 말고 이번에도 잘 해봐.”

편집장이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갑자기 옷을 챙겨든다.

“미안해, 내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네. 마저 들고 나와. 혜선씨는 내일보고. 거 잘써.”

무슨 일어날 시간도 없이 나가버린다. 덕분에 둘만 덜렁 남겨졌다.

이래저래 바쁜 척 참 많이 한다. 저사람.

“아니, 참. 인사도 못하게 그냥 가시네.”

“그러게요.”

한참을 할 말이 없다.

“애플마티니.. 그거 좋아하세요?”

침묵이 무거워 먼저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