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볼 필요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 뒤쪽자리에 앉는다.

점심시간을 조금 지난 오후. 언제나 그렇듯이 이맘때의 이 시간은 햇살이 나른하다.

어제는 이상하게도 햇살이 따가워서 하늘에 대고 생떼를 부렸었다.

말도 안 되는 건 알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이렇게 햇살이 좋은 건 반칙이야. 해가면서.

이정도의 햇살이라면 봐줄 수 있어.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저기.. 창문좀 닫아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죠. 하며 창문을 닫는데 하필이면 잘 닫히지가 않는 창문이다.

그냥 열어놓고 갈 것이지. 속으로 불평하며 꾸역꾸역 창문을 닫고 만다.

딸깍하는 소리도 나지않은채 창문은 닫혔고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다다음 정거장에서 같이 버스를 탈 친구 녀석이다.

“지금 다리 건넌다. 어디냐.”

녀석은 이미 버스정류장에 나와 있다면서 걱정 말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곤 끊어버렸다.

망할 자식. 아직도 머리가 어지럽다. 어제 마신 술 때문이겠지.

버스비를 넣자마자 내 쪽을 향해 고갯짓을 보내며 건들건들 다가오는 저 녀석의 이름은 병태다.

변태새끼. 그의 별명인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변태 같은 자식이다.

어젯밤도 내가 떠나고도 한참 뒤에나 여자들을 대리고 어딘가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잠도 못자게 깨우고 난리야.”

남들은 퇴근이 한두 시간 남았을 때이건만 이 녀석은 도통 시간이란 걸 제 멋대로 정의해버리고

사는 건지 남들 들으면 참 한심하다 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재미 좀 봤냐는 물음

에 뭐 다 그렇지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한다.

“그나저나 어제 너한테 살랑거리던 년은 아주 여우였어.”

“그랬나?”

난 그런거 잘 알지 못하니까. 되물어 보는 게 당연하다.

사실상 나는 년소리까지 들어야하는 그 여자를 기억하지도 못한다.

어젯밤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나는 다시 머리가 어지럽다. 속도 매스꺼워져 창문을 열고 싶다.

힐끔 뒤돌아보니 아까 창문을 닫아달라던 그 여자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창문을 열지도 못했다.

옆자리로 좀 가버렸으면 좋겠는데…….

속은 계속 울렁거리고 옆에선 친구 놈이 이런 여자는 어떻고 저런 여자는 어떻다며 조심해라 어째라 말이 많았고 창문은 열지도 못한 채로 20분이나 더 걸려 나는 아스팔트를 다시 밟았다.

이건 그냥 놀고 난 다음날의 습관이다. 해장국은 항상 이곳에서 먹어야한다.

어디서 술을 마셨건 그런 것은 상관이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해장을 하고 옆의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노느라 피곤해진 몸을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주문 같은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으니까.

선지 곱빼기를 시켜놓고 나는 팔로 배를 감싸 식탁에 엎드리듯 허리를 구부려본다.

속이 울렁거리고, 텅 비고, 시큼한 것이 느껴졌다.

어딘가 한켠이 무거운 기분. 나는 이런 기분을 자주 느끼는데 한번은 친구에게 이걸 얘기했더니 그건 내가 이상한 거라며 더 이상의 대화를 막아버렸다.

변태 같은 새끼, 니가 뭘 알겠어. 야만한 저 친구는 정말이지 저급한 대화 외엔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질 못한다.

사람말을 가로막았어.

밥한 공기를 다 비우고 국물까지 다 들이키고 나서야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들이 들어있는 잠바속의 주머니를 뒤진다. 4만원과 조금의 잔돈, 그리고 처음 보는 하얀 종이도 덩달아 탁자위에 내동댕이쳐진다.

낯선 그 하얀 종이는 조금은 끈적한 냄새나는 테이블이 끔찍하다는 듯 나를 응시한다.

“이 새끼는 또 아닌척하면서 번호나 따고, 줘봐 임마. 혜선이는 또 누구야?”

나를 노려보던 종이는 뒤통수에 이름을 달고 있었다. 혜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번호만있네?”

잠시 후 전화해보고 누군지만 알려달라며 녀석은 나에게 쪽지를 돌려준다.

“관심 없어.”

한손에 구겨진 종이는 해장국집 주인아주머니의 눈길 덕에 땅바닥에 버려질 뻔 한 신세를 면하고 다시 내 주머니로 돌아갔다.

“일하기도 바빠 죽겠어.”

사실 요즘은 일하기도 바쁘다. 어제도 저 녀석이 물 좋다고 나오라고 하도 졸라대서 나가본 게 그런 곳이었다.

“니가 무슨 맨날 백수지 뭐 있냐?”

엄연히 작가라는 직업이 있음에도 항상 친구들의 눈에는 내가 백수다.

다들 사업을 하느라 바쁘거나 회사 다니느라 바쁜데 늘 집에 있어서 집안일을 하게되는 나의 경우는 백수로 보일 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래, 보기에 따라서 나는 백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