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오면 생각나는 몇가지가 있다. 이건 거의 뼈에 각인되고 피에 녹아들어 본능과도 같은것이 되어버렸다.

이를테면 이렇게 장마비가 몇시간째 내리는 밤이 되면 이 서늘한 바람과 밤공기와 섞인 비냄새가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밖엔 주황의 가로등빛이 떨어지고 사라본의 A Lover’s concerto가 떠오르는.. 연쇄적이고 순차적이지만 거의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비. 라고하면 저 모든것이 한꺼번에 화악 일어나곤 한다.

때는 아마 내가 중 3이었던 때인가.. 아니, 고1때였던가. 여튼 영화 ‘접속’이 대박나고 난 후였다. 밖은 마치 장마비처럼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고 ‘솨아’하는 기분좋은 소리를 뒤로 깔고 라디오에서 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에 비냄새가 섞여 책상 위로 활짝 열려있던 큰 창을 통해 방으로 들어왔고 나는 그 분위기에 취해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으론 아파트 주차장이 보였는데 주황빛 가로등이 흘러가는 빗물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이때 또 생각나는것이 유니텔이다. 영화 ‘접속’이 연상되기 때문인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접속하던 네트워크가 바로 유니텔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중2때인 96년부터 우리집은 유니텔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나는 꽤나 열혈 사용자였다. 접속의 대 히트 이전까지만해도 통신 채팅은 나름 깨끗한 공간이었다. 그저 사람과 사람이 대화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이었다. 내가 고향으로 생각하고있는 그런 분위기.. 아무튼 그 순수했던 대화의 공간이 비 내음에 실려오는 느낌이 든다. 유니텔의 추억이..

사실 저 서늘한 바람만 아니라면 노란 우산, 노란 우의, Sing’in in the rain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길래 오래된 추억들을.. 아니, 몸속에 깊이 물든 추억을 하나 꺼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