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아이유

노래를 듣고 리뷰를 하는 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3년? 4년? 고작 일개 리스너에 불과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노래 한 곡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리뷰.

”]아이유 Real

대세 아이유가 앨범을 발매했다. 발매와 동시에 각종 실시간차트 1위. 다음날 공중파 출연과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 이렇게 시끄럽게 앨범이 발매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 정도의 임팩트는 소녀시대의 <Gee>이후 처음인 것 같다. 요즘 방송에 아이유 나오는 거 보는 낙으로 지내는 나도 냉큼 앨범을 들어보았다.

<좋은 날>

왠지 모르게 플레이와 동시에 각 잡고 앉아서 경청하게 되더라. 두어 소절 지나가고 슬슬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속으론 “왜 이래?” 한마디만 계속 맴돌았다. 편성은 왜 이래, 편곡은 왜 이래. 나쁜 게 아니고 납득이 안됐다. 초장부터 웅장하게 시작되는 편성. 스트링에 팀파니까지 동원되어서 시작은 되는데 이거 묘하게 이도 저도 아닌 사운드가 나온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도입을 지나자마자 후렴으로 가는 길이 멀기만 하고 후렴에 도착해서는 이미 보여줄 건 다 보여준 듯한 느낌에 살짝 맥이 풀린다. 스케일 큰 뮤지컬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는데 1절 내내 배우는 보이지 않는다. 다이나믹을 주기 위해 강조한 베이스라인이 조금은 역효과. 2절에 가서 원 투 주고받는 기타와 신디는 1절처럼 쭉쭉 뻗는 느낌은 사라지고 뻘쭘한 반주가 이어진다. 곡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아이쿠, 하나 둘)과 같은 장치는 훌륭했고 이어지는 “I’m in my dream”은 통쾌하면서 짜릿하기까지 했지만, 곡 시작부터 계속되었던 업비트가 순간 훅 소멸된 이후엔 “역시 대곡 편성은 함부로 손댈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 외엔 남질 않았다. 재차 강조하지만 후진건 아닌데 이거 보단 더 잘 할 수 있었잖냐는 이야기. 작편곡자인 이민수 씨가 누구던가. 브아걸의 <My Style>과 같은 센스를 바라는 게 무리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유가 이제야 제 옷을 입고 나는구나 할 정도로 훌륭한 곡을 만나긴 한것 같다. 지금껏 별로라고 떠들었던 문제들이 오히려 부족한 네러티브를 채워주는 역할을 해주니 전화위복이랄까. 게다가 뮤직비디오에서는 정말 뮤지컬 속의 주인공 같은 포스마저 난다. 프로듀싱이 조금 아쉽지만, 결과는 대성공.

7트랙, 6곡

마지막 트랙에 <좋은 날>의 MR을 넣은 것은 다 함께 질러보자는 취지인 건가. 뭐가 됐든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았던 곡도 <좋은 날> 가장 아쉬웠던 곡도 <좋은 날>인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본격적으로 ‘뮤지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취지인지 이전과 같은 닭살돋는 댄스곡은 빠졌지만, 그 이상은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특히나 발라드 트랙에서는 여전히 목소리에 네러티브가 부족한 것 같다. 인생을 덜 살아봐서, 라는 비교적 심플한 이유도 적용될 수 있겠다.

<좋은 날>을 빼놓곤 얘기가 안 되는 앨범이다. 헌데, 이 곡을 들으면서 떠오른 건 박정현의 <꿈에>였다. 당시 그 곡을 두고 “박정현이 아니면 성립조차 되지 않는 곡”이란 얘기가 있었다. 역시 대곡 편성. 그런 기억 때문인지 <좋은 날>을 들으면서 “아이유를 박정현처럼 키우려는 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와는 꽤 다른 기분이었던 게 <좋은 날>의 경우 아이유를 위해 아주 정교하게 계산된 연극 같은 느낌이랄까, 그 웅장한 4분간이 너무 심하게 아이유를 위해 배려되어서 역효과를 내는 것 처럼 들린다. <꿈에>는 박정현이 곡 자체와 싸워서 이긴 느낌. 물론 아이유가 박정현처럼 뛰어난 테크닉 위주의 가수도 아니고 윤미래처럼 목소리 자체에 진정성이 왈칵 배어나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여전히 “가능성 있는 가수” 인것은 사실이고 그런 포텐셜이 이런 곡에서 읽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날>은 타이틀곡이자 과제곡 같다. 몇 년 후엔 분명 reprise가 될 곡임엔 틀림없다. 그 외에 귀에 들어오는 곡은 <첫 이별 그날 밤>. 역시 윤종신. 아이유도 차라리 이런 곡이 더 소화하기 쉬웠던 것 같다. 다른 트랙들에 비해 훨씬 듣기 편하다.

곡 수집이나 프로듀싱에 있어서 소속사에서 조금만 더 받쳐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있다. 차라리 본인 타이틀이 걸리지 않은 여러 디지털 싱글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현상마저 보인다. <그대네요>, <잔소리>, <사랑을 믿어요>, <첫사랑이죠>와 같은 듀엣곡에서의 아이유는 본인 앨범의 발라드 트랙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말했던 네러티브 부족이 듀엣 호흡을 통해 극복되는 효과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만들어진 아이돌이라기 보다는 천연 아이돌인 아이유. 정말이지 보고 있자면 그 옛날 마크로스의 린 민메이를 보는듯한 착각마저 든다. 아이유랑은 10살 차이. 그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 원석. 요즘의 추세가 거친 하드트레이닝으로 제작자의 뜻대로 완전히 만들어진 상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서인지 아이유에 대한 아쉬움은 오히려 천천히 다듬어지고 성숙해가는 과정 같아서 보기가 좋다. 옛날 국어교과서에서 읽었던 것 중에 앉은뱅이책상을 마른걸레로 천천히 길들이고 광을 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깊은 빛을 낸달까. 오래된 한옥의 툇마루처럼. 그런 깊은 빛을 기대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레알 아이유”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레알 아이돌” 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