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난쏘공’ 200쇄 조세희씨 [연합뉴스 2005-12-01 16:10]

1978년 초판, 하층민 곤궁한 삶 그려 “긴 생명력은 ‘사랑’을 담았기 때문”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썼던 1970년대는 발딛고 선 땅밑에서 언제 터질지 모를 지뢰를 밟고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벼랑 끝에 ‘위험표시’ 팻말을 꽂자는 심정으로 이 소설을 썼습니다.”

산업화 시대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도시하층민의 삶을 담아낸 조세희(63) 씨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성과 힘)이 200쇄를 출간했다. 한 작가의 소설집이 200쇄까지 출간된 것은 한국문학사에서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200쇄 출간을 계기로 1일 대학로에서 만난 조씨는 “200쇄 출간은 부끄러운 기록”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억압의 시대를 기록한 이 소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읽혀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30여년 전의 불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난쏘공’으로 불리는 이 시리즈는 1975년 ‘문학사상’ 12월호에 실린 ‘칼날’을 시작으로 여러 잡지에 발표한 ‘뫼비우스의 띠'(‘세대’ 1976년 2월호), ‘우주여행'(‘뿌리깊은 나무’ 1976년 9월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문학과지성’ 1976년 겨울호),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문학사상’ 1977년 10월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창작과 비평’ 1978년 여름호) 등 중·단편 소설 12편을 묶은 것이다.

이는 1978년 6월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처음 출간됐다.

2000년 3월까지 문학과지성사에서 통산 4판 134쇄까지 발행된 이 소설집은 200 0년 7월 이성과힘(대표 조중협)으로 판권을 넘겨 지금까지 초판 66쇄를 추가로 발행했다.

2002년 6월 150쇄를 발간한지 3년여만에 200쇄에 이르러 요즘도 독자들에게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적 발행부수는 87만부에 이른다.

세대를 아우르며 독자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묻자 조씨는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80쪽)며 표제작의 한 대목을 읽었다.

이어 수록작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가운데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213쪽)면서 “내 소설은 어려운 시대를 다루면서도 ‘혁명’의 방식이 아니라 ‘사랑’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지금껏 죽지 않고 200쇄까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에 내 소설을 읽었던 한 독자가 중학생 아들에게 책을 권했을 때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이야기로 받아들였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난쏘공’의 이야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유는 잇따른 자살사태를 낳고 있는 농민시위와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요즘 우리나라 1년간 해외여행비용이 100억 달러라고 하는데, 이는 ‘난쏘공’이 나온 직후 박정희 시대에 한해 총수출액과 같은 수치입니다. 저는 850만 비정규직 근로자, 350만 농민들의 문제가 발목을 잡아 해외여행도 않고, 골프도 치지 않으며, 부자동네에도 살지 못합니다. 그들 1천200만명은 이 땅에서 가장 돈이 필요한 가장들이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최근 시위사태는 이들이 희망을 잃고 얼마나 슬프게 사는지 보여줍니다. 세상은 30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이날 카메라 가방을 들고 나타난 조씨는 근처 대학로에서 벌어지는 농민시위 현장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자들과 경찰들의 틈바구니에 있을 때 현장의 호흡과 신음을 가장 생생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 흔적을 후손에게 남겨야죠. 다산 정약용은 조선시대에 아픈 기록을 붓으로 기록했습니다. 나는 사진까지 동원해 이 시대 사람들의 얼굴을 남기고자 합니다.”

시대의 기록자이기를 바란다는 그는 “지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라고 ‘난쏘공’이 갖는 문학적 의미를 스스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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