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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창덕궁으로 출사를 갔다. 가는 내내 소란을 들었다. 샐러드 하나를 먹고 입장했는데 20분이 안 되어 매점에 모여 차를 마셨다. 한참 수다를 떨며 손을 녹이고서야 각자 사진을 찍으러 이동했다. 풍광사진이 주제였기에 궁내의 나무들을 위주로 찍었다. 프레임 안에 나무의 모습을 정리하여 찍으려면 나무와 대화를 해야한다고 했는데 그런건 여전히 불가능했다. 자연, 과의, 연결, 고리. 도시에서 자라서 그런 부분은 고자나 다름 없다. 내가 도시에서 빛을 명암과 색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접근하자 싶어 그저 나무를 색과 선으로만 인식하고 내키는대로 셔터를 눌러댔다. 날이 흐렸고 셔터스피드는 90을 넘기기 일수였고 내 관점은 언제나 궁의 난간이나 계단이었다. 사진이 다 흔들려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아그파 CT 100과 벨비아 50 두 롤을 다 찍고 나니 2시가 가까워졌다. 돈화문을 돌아나왔다. 이날의 창덕궁은 단풍이 예뻤고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났다.

책모임에서 샐러드를 하나 더 먹고 빨갱이의 토론을 했다. 운동권 입장에서야 다 때려부수면 그만이겠으나 비운동권의 입장에서는 문제인식에서 혁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간극이 비약에 가깝기 때문에 일련의 보편타당하고 일상에서 실현 가능한 실천적 대안이 필요함을 역설했지만 운동권이 그거 몰라서 안했겠냐는 결론. 근본적으로 사회 시스템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아무리해도 시스템의 악한면-인간의 죄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데-을 싸워서 때려잡지 않으면 궁극적인 목표가 모호해지는 모순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대안을 모색하고 실험하는게 포기하고 손 놓는 것 보단 낫다는 결론. 내에서 당장에 적용하기엔 오히려 적절한 수위가 아니었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추모제가 있는 주말이기에 여의도에 갔다. 코묻은 돈을 후원했고 그보다 많이 얻어먹었고 이주노조의 후원 물가는 가혹했으며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의 많은 회원들과 처음 만났고 대건설노조 경인지부 조직부장 햇님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노동당 부대표의 실물도 구경했다. 그 외 많은 분들과 인사했지만 잘 모르는 아저씨들이었다. 전태일 열사는 정말 추운 계절에 분신했구나.

여의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느라 첼시 경기 전반전을 보지 못하였으나 지인의 문자로 득점 상황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수비수 굴절로 한 골 먹었다길래 내지는 케이힐이겠거니 했는데 정말 케이힐이었고 그의 실점과 득점 장면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하이라이트로 확인 할 수 있었다. 피곤해서 욕 할 기운도 없이 침대에 누워 후반전을 봤는데 전반적으로 경기력이 하락세라 한숨만 나오는 경기었다. 케이힐은 평소에도 오늘 이상하다 싶으면 90분 내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 경기가 그러했으며 사실상 PK하나 내줬어야 맞는 상황이었다. 리그 1위, 챔스 조 1위를 하고는 있으나 12월을 생각하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